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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쉿 레간자

by 밀까년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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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우자동차의 세계 경영의 일환으로 자동차 사업을 부풀리려던 김우중 회장은 자사와 GM 차량들의 기술 종속 관계가 심각하다 판단하였고, 이에 새로 편입한 워딩 테크니컬 센터와 부평 연구소 등에 신차 개발에 대한 주문을 넣은 끝에 1997년 출시하게 되었다. 당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분의 증언에 의하면, 시제차량들은 독일 오펠사의 최신 부품들을 제공받아 제작되었으며, 아우토반 등지에서 혹독한 기능시험을 했네요. 특히 중/고속 주행 시 정숙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진들이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네요고 합니다. 그러나 정숙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차음재 등을 대거 적용하다 보니 차체 크기에 비해 중량이 다소 무거워졌다. 실제로 레간자는 1,315kg로 상급 모델인 매그너스(1,285kg)보다 무게가 꽤 나가는 편임.


1997년 3월 20일에 프린스의 후속 차종으로 발표되어 같은 해 4월 1일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1998년 2월 16일에는 영업용 택시가 추가되었다. 출시 당시 신선한 디자인으로 주목 받아 기아 크레도스를 누르고, 현대 소나타 Ⅲ에게 위협적인 상대가 되었다. 그러나 출시 이후에 예상치 못한 대우그룹의 부도 문제와 해체, 현대 EF 소나타와 기아 옵티마 및 르노삼성 SM5 등 새로운 경쟁 차종이 출시되어 레간자의 입지가 좁아졌다. 1999년 12월에 새로운 중형 차종이자, 상급 차종인 매그너스가 출시된 이후에는 고급 스펙을 없애고 가격을 낮추어 2002년에 매그너스와 통합되는 형식으로 단종될 때까지 저가형 중형차와 택시로 매그너스와 병행 판매되었다. 디자인의 경우에는 지난 1991년 이탈디자인에서 재규어 측에 제안 모델로 디자인한 재규어 켄싱톤 콘셉트를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직접 수정한 것임. 당시 대우차 측에서는 '우리나라적인 미'라는 포맷을 부탁했는데, 이에 쥬지아로는 한복과 매화, 고려청자 등의 고전 미술품들을 무려 1,300종이나 감상한 뒤 이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휠, 전면부 디자인, 전체 프로포션 등을 지금과 같이 수정했네요고 합니다. 재규어 켄싱턴의 전면부는 레간자에 비해선 괴리감이 있지만, 후면부 라인과 도어 라인을 보면 레간자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네요.

대우자동차가 20여 년 만에 대우 로얄 시리즈의 FR 플랫폼에서 벗어나 출시한 독자개발 중형차로 당시 라노스와 누비라 등에 적용된 대우자동차의 패밀리 룩인 3 분할 그릴을 적용하였다. 대우자동차의 의욕적인 행보에 국내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 등 여러 나라에서 호조세를 보였으며, 대우차 3 분할 3 총사라는 명성과 함께 현대차와의 국내 시장 점유율 격차를 많이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해낸 차량들 중 하나임.

 

또한 지금까지도 성공한 마케팅 사례로 회자되는 소리 없이 강하다. 쉿~! 레간자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소비자들에게 레간자를 각인 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레간자를 출시하기 전 김우중 회장 앞에서 광고 기획을 비롯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 평소였으면 그냥 듣고만 있을 김우중 회장이 발표 내내 집중하며 적극적으로 질문을 쏟아 냈다고 합니다. 즉, 저 문구의 임팩트가 마케팅의 귀재 김우중 회장에게도 강렬했던 것임. 로열 시리즈와 프린스 등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우자동차의 중형차는 후륜구동 방식이었으나, 레간자는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방식으로 된 중형 차임.

레간자는 'elegante'(우아함)과 'forza'(힘)이라는 이탈리아어가 합쳐져 소리 없이 조용하고, 우아한 힘을 지닌 자동차라는 의미 외에 '來強者'(래강자, 새롭게 다가온 강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네요.


국내 중형 세단 최초로 5 볼트 휠을 적용하여 타사 차량 대비 주행기능의 향상을 꾀해 내었으며, ZF의 전자식 4단 자동변속기가 주행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고, 출시 당시 '""쉿! 레간자""'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 동급 대비 뛰어난 정숙성을 강조하는 미디어 광고를 대대적으로 주창하여 현대 소나타 3과 기아 크레도스가 이루던 중형 구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 데이터 1997년 3~7월 월간 자동차 판매량 조사에서 자가용 모델로는 소나타 3을 제치고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1980년대의 영광을 잠시나마 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던 기어비도 DOHC 엔진의 경우에는 대우답지 않게 과감히 클로즈 레이쇼 스펙으로 셋업을 변경해 대우차는 순발력이 굼뜨다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당시 각종 잡지는 물론이고 PC통신 자동차 관련 게시판마다 대우차가 진짜 달라졌다!라는 호평역시 넘쳐났을 정도. 그러나, 데시벨상으로는 엔진음이 굉장히 정숙하긴 하나 특유의 날카로운 금속성 엔진음 때문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귀에 거슬리는 관계로, 부드러운 음색의 엔진이 장착된 EF 소나타나 SM5 1세대에 비해서 체감적으로는 다소 저속 구간에서 시끄럽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고.

 

이외에도 대우차의 전통답게 고속주행 시에는 진가를 발휘했는데, 경쟁 모델보다 뛰어난 공력 기능을 바탕으로 DOHC 엔진의 경우 순정 모델들도 200km까지는 가뿐히 도달했으며, 실제로 2000년대 중반까지도 고속도로 내 과속 차량 모델 리스트에도 레간자가 계속 링크됐었다. 그만큼 차가 잘 나갔다는 이야기. 다만, 이듬해 출시한 EF 소나타가 당시 남양연구소에 완공된 풍동시험장에서 담금질을 함에 따라 공력 기능이 레간자 못지않게 크게 높아져 1km/h 차이로 레간자를 다시 따라잡기는 했네요. ㅡ에어컨은 대우차!라는 장점 역시 더욱더 극대화시켜서 중형 세단 최초로 AQS기능이 장착된 풀 오토 에어컨을 선보였으며, 후석 선반에 공기청정기 역시도 국산차 중에서 처음 선보여낸 바가 있네요. 당시 대우가 집중하던 부분 중에 하나가 AV시스템이었는데, 순 깡통 오디오 조차도 라이벌들의 고급형 오디오보다 월등한 기능의 출력과 음질을 자랑했네요. 아이들링에서는 그 시절 경쟁 차량들인 현대 소나타 3나 기아 크레도스보다 음압(Db)이 높았고 정속 주행 시 음압(Db)이 경쟁 모델 대비 낮았다. 그래서 아이들링 시 음압이 높은 것에 트집을 잡혀 과장 광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네요. 하지만 출고 후 1년 뒤까지는 경쟁 중형차에 비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신차 기능은 월등했네요. 

 

이 당시 대우차가 그랬듯 아연도금 강판의 부재와 캐비티 왁스의 내수 스펙 적용 취소로 부식 발생이 많다. 현재 중고차 시장에서 보기 드문 이유는 수출로 나간 것도 있지만 녹 때문에 폐차된 대수도 꽤 많다. 후륜 쇽 앱소버 마운트가 부식에 내려앉을 정도로 심한 차들도 있었고, 이런 부식 문제가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네요. 대시보드, 도어트림 들뜸 현상이 두 번째로 유명한 결함이며, GM대우에서 2003년에 해당 결함에 대해 무상수리를 하였지만 우리나라 지엠으로 개편된 이후 아직까지 무상수리를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낮은 급인 누비라, 라노스에도 이런 결함은 없었다. 하지만 동호회의 도움 및 정비망이 나름 괜찮은 편에 속한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해당 결함이 가장 치명적인데, 이미 망하고 없어진 회사가 GM에 흡수되어 GM에서 조차도 순수 대우차량에 대한 정비지원이나 부품 수급을 전혀 안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 해외의 경우 고칠 방법이라곤 폐차장에서 다소 상태가 멀쩡한 대시보드나 도어트림을 뜯어오는 것 말곤 없다. 해당 결함은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였지만 부품난으로 인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한 채 폐차되어 사라진 레간자가 많아 요즘은 북미에서도 레간자를 비롯한 오리지널 대우차를 보기 힘들어졌다.

 

북미 수출형 한정의 애로사항으로, C22 SED 엔진 이외에는 상위급의 고배기량 엔진이 전무했던 대우자동차의 사정 때문에 북미시장에서는 고배기량 수요 대응에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비교적 출력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더군다나 당시 GM은 대우자동차가 자사와 결별 후 IAD 인수, 독일 GTC 설립, 부평연구소 대거 개편으로 독자개발에 나서는 것에 미묘한 반응을 보여서, 1980~1990년대처럼 대우자동차가 GM의 주력 엔진 공급을 쉽게 요청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가까운 듯 먼 사이인 것이었다 반면 미쓰비시와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었던 현대자동차는 고배기량 파워트레인을 미쓰비시에서 무리 없이 가져올 수 있어서 북미시장 대응이 매우 수월했고, 현대 델타 엔진도 막 개발이 완성되어 기술자립도 한 수 앞선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레간자는 경쟁 모델 대비 파워트레인 열세로 북미에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실내 공간과 승차감 등 상품성을 대폭 개선해 출시된 EF 소나타와, 삼성자동차 출범과 동시에 판매된 SM5 1세대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며, 또한 IMF로 인한 소비 심리 축소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호 세그먼트가 연료 및 유지비가 중형차보다 저렴한 경차와 준중형차로 옮겨갔고, 경쟁사들의 물량 공세 등의 영향으로 1997년의 판매량을 이어나가지 못하였다. 그래도 EF 쏘나타와 SM5 또한 IMF로 인해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낮았고, 레간자 또한 이들 차량과 비등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경쟁 체제를 계속 이어나갔다. 엔진은 1.8ℓ, 2.0ℓ, 2.2ℓ임. 독일 ZF 사의 자동변속기에는 급출발 방지 장치(BTSI)가 장착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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